Work Text:
첫 번째 변형 발생까지, 앞으로 6일.
에스프레소는 간밤의 침입자로 인해 심기가 아주 불편했다. 언제는 안 그렇겠냐만은, 그의 연구실을 덮은 기이한 액체들이 서로 반응하며 인 냄새로 인해(그것이 아니더라도 다른 만약의 것이 있으므로) 짧게도 며칠 길면은 몇주를 식만 끄적이며 보내야 한다는 불만 때문이리라. 제 이름과 같은 에스프레소가 담긴 아주 작은 잔을 호록이며, 이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계획을 세워보았다. 실험을 못 하는 이상 식을 세운다 하여도 당장 확인할 수 없으니, 훗날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 해메일 것이라는 불안이 에스프레소의 머리를 차고 지나갔다.
"망할!"
에스프레소는 감옥에 있을 쿠키에게 닿지 않을 욕을 읊조렸다. 무의미한 혼잣말과, 발만 구르며 화를 표출하는 행위는 그 스스로가 비합리적이라 판단내린 행동이지만서도 원래라면 진작 5개 이상의 실험에서 결과를 구했을 수 있다 생각하니... 갈 곳을 잃은 분노가 사그라드는 것을 기다리며 쓰디쓴 음료와 두껍게 코팅된 도넛을 삼키던 에스프레소의 도로가를 훑어보던 시선이 어느 건물 앞에 멈추었다. 그가 유독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대수롭지 않게 여길 마력의 흐름이 일렁이고 있는 것이다. '속박,과 차단인가... 아주 천천히 허공에 그려지는 마법을 단숨에 읽어내린 에스프레소는 잠시 제 행동을 저울질했다가, 손을 휘저었다가, 몸을 일으켰다. 비효율적인 행동이겠지만... 단순한 변덕일 것이다.
전화박스에 들어가 동전 하나를 넣고, 번호를 입력하는 행동은 생각보다 빠르게 이루어졌다. 마법 시전까지의 남은 시간을 어림해본 에스프레소는 지직거림이 강한 전화기에 대고 입을 열었다.
"파르페디아 2번지 슈거 베이커리 근처의 은행입니다. 확인된 마법식은 속박, 차단. 이 외에 아직 희미한 마법식이 둘 정도... 두 명에서 많게는 5명 정도로 추측됩니다. 강도겠죠. 아니면 뭐겠습니까? 마법 조절을 못하는 초급 마법사?"
이 정도면 되겠지. 에스프레소는 짜증 대신 밀려오는 다른 감정을 쳐내며 근처 벤치에 걸터앉아 숨을 뱉었다. 이렇게 시간이 남아돈 적은 없었기에, 갑작스런 휴식이 되려 에스프레소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것이다. 집(이라 부르기엔 연구소가 더 어울리는)에서 드러누워 잠을 자자니, 그의 일과표 중엔 특정 요일에 자는 날이 정해져있어 잠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정신을 노곤하게 만드는 것이 나을 것이라 판단한 에스프레소는 손에 묻은 설탕 코팅을 핥으며 밀크티와 슈가코팅도넛 한 상자를 주문했다. 이것들은 에스프레소의 오늘 하루를 부드럽고 달콤하게 녹아내리도록 도울 것이다.(진짜로 녹는다는 뜻은 아니다. 쿠키가 녹으면 병원에 먼저 가야 한다.) 오랜만에 휴식을 위한 독서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중얼거리며 베이커리를 나서고, 제 집(연구소)에 가기 위해 은행을 지나던 중 에스프레소의 눈에 마력 하나가 잡혔다.
"하, 염병할!"
사용한지 오래 된, 어색하기까지한 욕이 에스프레소에게서 터져나왔다. 고유의 마법을 탄생시키기 위해 통달한 지식의 도움으로, 거칠게 속박마법을 깨트린 에스프레소는 눈을 가늘게 떴다가, 성질 나쁜 고양이처럼 송곳니를 드러내며 가볍게 마법 하나를 시전했다. 은행의 입구는 전부 유리였으므로 가능한 도박이었다. 하나가 깨지며 같이 흩어진 마력이 커피 특유의 향기를 머금고, 검갈색으로 휘돌며 강도들을 한 번씩 강타했다. 오랜만에 먹은 슈가코팅도넛 덕인지 생각을 거치지 않고 나온 것 치고는 꽤 부드러운 처사였다.
귀찮아질 행동을 했음을 깨달은 에스프레소가 간단한 속박마법을 던지다시피 푼 뒤, 놀란 탓에 놓쳤던 도넛 상자를 챙긴 뒤 그는 제 집에 향했고, 그 발에 묻은 밀크티의 향기만이 흔적으로 남았다. 늦게 도착한 경찰들이 현장을 통제하고, 속박마법에 엉망으로 묶인 범인들을 잡아갔다.
아몬드가 현장에 도착하기엔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 걸렸다(아몬드가 맡은 일을 감안하자면, 꽤 짧은 편이다). 하지만 이곳, 마법사들의 도시에서 마법적인 흔적은 10분이면 금세 사라진다. 만약 범쿠의 조력자의 흔적이라도 놓쳤다가는 몸이 바스라지는게 먼저일 것 처럼 온 마법을 총동원해야 하는 것이다. 아몬드는 현장을 대강 살펴보았다. 대놓고 손님처럼 들어온 듯, 꽤 오래 남는 탤레포트 마법의 흔적은 없었다. 대신 지독한 커피 향이 감돌았다. 이렇게 마력의 잔향이 강하게 남았다면, 그 규모도 꽤 컸으리라. 아몬드는 조사차 발이 묶인 수많은 증인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흠... 이 짙은 커피 향의 원인에 대해 아는 것 있으십니까?"
"그 마법 말이에요? 아주 컸고, 검었어요. 자칫하면 우리들까지 휩쓸릴 뻔 했다니까요?"
은행 직원이 투덜거렸다. 그 직원은 서류가 함께 휘말린 탓에 당분간 야근을 피할 수 없을 거라는 사사로운 이야기까지 꺼냈다. 아몬드는 더 이상의 대화가 불필요하다 판단내렸다. 등을 돌린 아몬드에게 다가온, 마법 생도로 보이는 청소년이 입을 열었다.
"강도들이 나타나면서 소음을 막는 마법이랑, 은신 마법을 펼쳤는데 그와 동시에 엄청 큰 마력의 움직임이 일어났죠. 정확히 강도들만 끌어들이고 터트리면서.. 믹서기처럼 가는 종류의 마법이었어요. 제가 알기로 그건... 커피마법이에요. 아마도. 검붉고, 회색이 섞인 갈색에... 디저트 마법에서 따로 분류되니까 아마 찾기 쉬울 거에요."
전혀 예상치 못한, 귀중한 정보다. 아몬드는 그 생도에게 감사인사를 건네고, 다시 현장으로 향했다. 다시 본 현장은, 꽤 흥미로운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둥글게 유리파편이 없는 공간이라던가. 유리파편 대신 밀크티가 떨어진 곳은 그 방어막이 구의 형태가 아니라 타원형을 이루어 마력을 최소화했음을 드러냈다. 희멀건 얼룩이 얼마 가지 않아 사라졌지만, 근처 감시카메라를 뒤적이면 해당 마법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아몬드는 늦은 식사를 위해 근처 베이커리에 들렸다. 그의 기억이 맞다면, 가까운 곳에 밀크티를 테이크아웃 하는 곳은 이곳 뿐이다. 강도 사건 탓인지 사람이 가득했을 빵집은 손님 한 명이 도넛 진열대를 돌아다니며 도넛을 집고 있었다. 아몬드 또한 도넛 고르기에 합류하여 집게를 놀렸다. 대충 도넛 하나를 집으려던 집게가 다른 집게에 부딪쳤다. 드문 세로 동공의, 에스프레소가 목표를 돌려 쌉쓰름하다는 말차 도넛을 집었다.
'디저트 마법의 특징은, 사용자의 향과 디저트 마법의 향이 동일하다는 것에 있다. 즉...' 에스프레소의 짙은 커피 향에 대해 떠보기 위해, 아몬드는 밀크티를 추가로 주문했다. 목이 마른 상황에 공짜 음료를 거절하는 사람은 없으므로. 에스프레소가 골랐던 종류의 빵을 추가로 구매한 아몬드가 에스프레소에게 다가갔다.
"크흠. 합석해도 될까요?"
"아, 가능합니다만..."
대부분의 자리가 텅 비어있는데 굳이 합석을 물어보는 아몬드를 훑어본 에스프레소가 두꺼운 초콜릿 코팅이 된 도넛을 씹었다. 검은 초콜릿이 조각나며 에스프레소의 입에 묻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손수건을 건내준 아몬드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저쪽 은행에 강도가 들었었다는데, 아십니까?"
"...알다마다요. 제가 그 앞을 지나고 있었으니." 에스프레소는 한숨과 귀찮음이 섞인 표정으로 슬쩍 건내받은 밀크티를 들이켰다.
"거기에 엄청난 마법사가 나타나 사건을 정리했다고 하더군요."
에스프레소의 눈이 게슴츠레하게 바뀌어 아몬드를 훑어보고, 다른 도넛을 집으며 입을 우물거리다 한숨을 뱉었다. 꼬았던 다리를 푼 에스프레소는 여유롭다는 듯이 웃으며 아몬드를 노려보았다.
"커피마법을 탄생시킨 쿠키가 바로 저입니다. 마법 하나를 개발하기 위해 제가 어떤 마법들을 완벽히 마스터해야 했을까요? 그들의 마법 실력도 썩 괜찮은 편이었지만, 제 앞에선 독 안에 든 쥐나 다름없죠. 용건은 이걸로 끝입니까?"
커피빛 시선에 잠시 움츠려든 아몬드의 머리가 맹렬히 굴러간다. '이 쿠키는 대마법사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아주 만약에... 이 쿠키가 동업자가 된다면?' 야근에서의 탈출, 빠른 사건 해결과 마법사들이 알 법한 흔적의 탐색... 아몬드의 머릿속에서 휴식이 보장되는 일자리에 대한 희망이 하나 둘 몸을 일으켰다. '에스프레소를 영입한다면 더 이상 다 불어터진 라면을 먹을 일도 없을 것이다.'
"저는 아몬드맛 쿠키입니다. 이 구역, 마법사들의 도시 구역을 전담하는 형사입니다. 당신은...?"
"에스프레소맛 쿠키입니다. 흠... 보다시피 마법사이며, 커피마법의 1인자가 바로 접니다."
에스프레소는 갑작스런 통성명이 당황스러운지 다 먹어치운 도넛 대신에 밀크티를 빨대로 아주 많이 들이켰다. 그 서늘한 시선은 경계와 호기심의 사이에 놓인 줄을 타는 고양이의 눈과 닮은 것으로 보였다. 아몬드는 자신의 직장에 대한 희망을 나타내며 품에서 자신의 명함을 꺼냈다.
"비록 형사 일이 그리 편할 것이라는 장담은 못 드립니다. 하지만... 당신처럼 아주 뛰어난 마법사가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꽤 괜찮은 동업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어떠신지요?"
아몬드의 동업 제안은 꽤 매력적으로 들렸다. 커피마법의 까다로운 조건과 값비싸거나 흔치 않은 재료들은 에스프레소가 늘 돈에 시달리도록 만들었고, 비록 매달 들어오는 책과 논문 등의 돈 수급처가 있다지만 그 양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형사라는 직장은 조금 바쁘겠지만, 월급은 에스프레소를 만족시킬지도 몰랐다.
"아몬드 형사. 당신의 사무소에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만족스러운 조건이 된다면, 저는 괜찮은 동업자가 될 지도 몰라요."
에스프레소는 기분 좋은 고양이처럼 눈꼬리를 접어올리며 웃었다. 짧은 시간 동안 아몬드는 조력자를 고용할 것이고, 에스프레소는 고용되어 월급과 연구소의 원상복귀를 기다릴 것 이다.
